교회 안에 있다고 신앙인이고 교회 밖에 있다고 신앙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고 교만입니다. 교회 안이든 밖이든 그 삶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로서 드러나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교회 안보다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향해 있습니다. 그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고 계십니다.
교회 밖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단정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런 교만이 어딨습니까? 헌금 좀 한다고, 교회 직분을 맡아 섬겼다고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딸이고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 교만은 버려야 합니다.
-p 20~21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신가는 알아야 하고 그 뜻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기독교는 반대할 수 있어도 진리를 반대하면 안 됩니다.
교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자신에게 주신 많은 사랑 가운데 일부를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책임입니다. 그렇게 하도록 이끄시는 분이 바로 성령입니다. 이것을 체험하면 우리는 신앙 안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사명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p 25
소유는 우리 인격을 위해서, 인간다움 삶을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과 의미는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채워집니다.
-p 27
사람은 누구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니 소유를 목적으로 두고 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p 29
재산은 내 인격의 수준만큼 필요한 것이지 내 인격의 수준보다 많이 가지면 재산의 노예가 됩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기도는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양식은 주십시오. 저는 더 차원 높은 일, 더 소중한 일을 위해서 살겠습니다"라는 뜻입니다.
-p 31
개인은 열심히 일하고 많이 벌어서 부를 얻어야 하지만, 그렇게 번 돈을 나를 위해서는 적게 가지고 사회를 위해서는 많이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게 기독교의 경제관입니다.
예수님이 저에게 주신 인생관은 '정신적으로는 상류층에서 살아라.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중산층에서 살아라'입니다
-p 37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은 정권을 가져야 나라를 바꿀 수 있다고 하지만 실은 섬기는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셨습니다.
-p 41
인생을 사랑하며 인격을 귀하게 키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인격을 키우기 위해서는 예수님 말씀을 우리의 인생관으로 받아들이고, 하늘나라를 위한 사명감으로 삼으면 됩니다.
-p 43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되고, 그렇게 사는 사람이 교회를 통해 많아지면 역사와 사회 속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p 44
"너는 왜 여기 와서 나를 찾느냐? 나는 지금 여기 있지 않다. 내 뜻이 있는 곳에 내가 있다.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해서 고통을 겪는 환자들 옆에 내가 있다.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이 많은 곳에 내가 있다. 큰 예배당이 아니라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 옆에 내가 있다. 나는 세상에서 버림받고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 옆에 있지, 이곳에 있지 않다. 그러니 이곳에서 나를 찾지 마라."
-p 52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나는 사람은 기복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나 중심'의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묻는 기도를 하게 되고, 그 뜻을 따르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p 54
더 많은 재산을 갖고 싶어 하고 더 많은 권력을 얻고 싶어 한다면 그는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크리스천은 나 하나를 만족시키는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p 57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질문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가치판단의 기준이 예수님이 됩니다.
-p 60
"밟아라.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라. 내가 세상에 온 것은 너희들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서다. 그래서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저는 이 작품을 읽고 '아, 인간을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구나. 이웃을 사랑할 수 없다면 신앙을 지킨다 해도 의미가 없는 것이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p 69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게 무엇입니까? 종교적인 어떤 형상도, 교리 문제도 다 버리고 진실과 사랑을 취하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은 "진실하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참되게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올 터인데 바로 지금이 그 때이다"(요 4:23)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은 내 마음의 문제요 진리의 문제입니다.
-p 75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인간의 삶을 역사라 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머무는 순간을 영원이라 한다"고 정의했습니다.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과의 동시성입니다. 하루하루를, 한 시간 한 시간을, 일 년 일 년을, 일생을 예수님과 같은 시간에 함께 머무는 것입니다.
-p 83
진리를 교리로 바꾸면 하나님 나라는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교리가 진리로 바뀌어야 합니다.
-p 97
신앙은 선택입니다. 그 선택 가운데 가장 중요한 첫 번째는 바로 예수님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가장 넓은 사회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정의를 넘어서 사랑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먼저 온 일꾼이 불평하며 항의하자 주인은 "내가 너와 약속한 돈을 주는데 잘못된 것이 없지 않으냐. 늦게 온 저 사람들이 빈손으로 가게 되면 가족이 전부 굶어야 한다. 내가 베풀 수 있기 때문에 사랑을 베풀었다. 그것이 잘못이라고 할 수 없지 않으냐"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독교는 영원히 새로운 진리입니다. 교리가 아닙니다.
-p 104~107
성경을 받아들일 때 사건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신화 속에 역사가 들어 있고, 역사 속에 신화의 정신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p 110
사도 바울은 당시 유대인들은 기적을 바라고 헬라인은 지혜를 믿는다면서 자신은 이 두 가지를 다 경험한 자로서 거기에 희망이 없음을 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고대의 긴 역사가 끝나고 희망을 다 잃어버렸을 때 오셨습니다. 그리스 철학이나 로마의 사랑이 황혼기가 된 때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예수 그리스도의 인생,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역사의 희망이라고 믿었습니다.
-p 118
우리는 신앙하면 뭔가 신비롭거나 커다란 변화를 생각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인간은 그저 인간일 뿐입니다. 인간이 삶의 목적을 찾는 것이 신앙입니다. 내 삶의 목적이 내 인생과 더불어 끝나지 않고 영원히 남음을 믿는 것입니다.
-p 122
인간은 목적도 의미도 모르면서 헤매는 군중 속의 한 사람이 아닙니다. 인간의 정신, 즉 내면적 자아는 인간 자체를 초월하기 원합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절대자이자 초월자인 신 앞에서의 자아를 찾아야 했습니다.
-p 127
"오늘날 미국이 선조나 선배들 덕분에 세계 최고로 부강한 나라가 되었는데 그것을 다 우리 것이라 여기고, 우리끼리만 행복하고 즐겁게 누린다면 미국은 희망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희망이 있는 나라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바로 선조들이 물려준 를 못살고 힘없는 나라들에 나눠주어야 합니다. 아프리카에도 보내고 아시아에도 보내 그 나라들이 잘살게 되면 미국은 더 잘살게 되어 있습니다. 나눠주지 않고 움켜쥐려고 하면 위험합니다."
-p 138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을 열매를 맺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실 것이다"(요 15:16)
"너는 네가 나를 택했다고 믿고 있는데 사실은 내가 너를 택했다. 이제부터 내가 너와 더불어 함께하겠다. 내가 너와 같이 있을 것이다."
-p 143
저는 크리스천이 할 일은 첫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어렵더라도 희망을 가져야 하고, 또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산다는 건 바로 우리를 통해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도록 돕는 것입니다.
-p 144
무교회는 없습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이 모이면 그것이 교회입니다. 교회가 신앙공동체입니다.
"교회가 교회 구실을 못한다면 교회 밖에서라도 기독교는 살아야 한다."
-p 147
희망은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는 신앙에서 나온다.
-p 148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다.
-p 150
그런 사건을 겪다 보면 겸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니라는, 내 마음대로, 내 뜻으로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섭리 아래서 움직이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민족이 어려운 때입니다. 저는 이런 어려운 때에도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p 152
율법과 계명으로는 선악을 분별할 수 없다.
-p 156
교리는 교회를 지키고 보전하기 위한 것이지 역사적, 사회적 질문에는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교리가 해답을 주면 오히려 고통스럽습니다.
-p 161
'오른뺨을 치는 자에게 왼뺨도 돌려대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비유이지 그대로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의미이지 맞고 안 맞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p 164
율법도 계명도 교리도 대답해 줄 수 없는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상 사람들은 이성과 양심이 대답한다고 말합니다. 이성과 양심은 어떤 면에서 교리보다 높은 수준의 의식입니다.
양심에 따라 행하라
-p 166~167
공자님의 교훈 가운데 가장 소중한 건 바로 인간관계를 선하고 아름답게 이끌어 가라는 것입니다.
-p 168
양심과 진실, 그리고 인간애는 남아야 합니다. 이것까지 거부하면 역사는 살아남지 못합니다. 그런데 양심과 진실, 인간애를 우리에게 요청하고 가르쳐 준 분이 그리스도이십니다.
-p 170
크리스천은 어리석은 것 같으나 지혜롭습니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줍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모든 문제를 안고 그리스도께 가는 사람은 문제의 해답을 받고 돌아갑니다.
-p 173
"내가 너희들을 사랑한 것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
예수님이 인간으로서 제자들을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예배 많이 드리는 것보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이웃을 위하고 사랑하면 그것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입니다.
진심이 남는 사회, 인간애가 가득한 하나님 나라가 제게 주어진 마지막 목표입니다. 그 목표가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가 한 인간이자 크리스천으로서 이러한 인생관과 목표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살면 우리 삶에 작은 변화가 생깁니다. 마지막 날에 내 인생 전부가 주님이 목표였다는 고백을 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p174
믿음, 소망, 사랑은 개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과 사랑은 역사적 사명을 느낀 공동체가 가지는 교훈입니다. 예수님의 뜻을 전해 주는 기독교 사상가들은 믿음, 소망, 사랑과 더불어 자유, 평등, 사랑을 많이 강조합니다.
-p 178
성경에 있는 것은 소중하고, 성경에 없는 건 세상 문제라고 갈라놓는 것은 옳은 생각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개인은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살고, 사회는 자유와 평등을 찾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역사가 세워집니다.
-p 180
"우리 인간에게는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질서가 있습니다. 육체에 필요한 것은 자연의 질서, 즉 자연법칙입니다. 인간은 자연법칙에 따라 삽니다. 그다음에는 정신적인 질서가 있습니다. 평화의 질서, 자유의 질서, 도덕의 질서 등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인간으로 제대로 살지 못합니다. 정신 질서가 높은 사람도 있고 낮은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두 가지로 끝난다고 보지만 저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서 또 하나의 질서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정신적인 질서를 이끌어 주는 은총의 질서입니다. 그 은총의 질서를 이끌어 주는 것이 성령의 역할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p 181
자유와 평등은 사랑으로 온전해진다.
정의는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정의만 끝까지 주장하면 싸움만 납니다. 우리가 정치하듯 정의만 따지면 남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말씀이고 역사에 길을 만들어 주는 일입니다.
-p 190~191
성경 말씀을 이해하는 것은 삼각형의 세 각과 같아서 비유의 말씀을 들어서 뜻을 깨닫고, 실천하며, 실천을 통해 체험한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눔으로써 보다 온전한 이해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신앙은 우리의 체험 속에서 이루어는 것입니다.
-p 197
주님은 열심히 벌어서 자신은 적게 가지고 사회에 주기를 원하십니다.
또 예수님은 높은 자리에 앉지 말고 낮은 자리에 앉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섬김을 받으려 하지 말고 섬기는 자가 되라 하셨습니다.
-p 216
죽은 자를 장례 치르는 일이나 가족에게 작별을 하는 일은 죽은 사람들에게 맡기십시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주님이 나에게 맡겨 주신 인생을 사는 사람을 주님은 버리지 않으십니다. 내 인생을 주님께 맡기고 사는 영광스러움은 나를 위해 있는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사랑의 짐을 짊어지는 길입니다.
- p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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