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우리는 미켈란젤로를 만나러 갈 것이다. 그를 만나고자 하는 이유는 질문을 하고 싶어서다.
미켈란젤로 선생님, 선생님은 위대한 예술가로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란 말에 공감하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말의 진정한 의미가 궁금합니다.
여기서 '개인적'이란 말의 의미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어떻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 될 수 있나요?
그의 대답이 궁금하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우리는 미켈란젤로를 다섯 번 만날 것이다. 한 번의 만남으로는 우리가 찾는 답을 모두 얻을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오늘 미켈란젤로와의 첫 만남은 그의 작품 '피에타'를 통해서다.
그의 작품을 보기 전에 우리는 약간의 공부가 필요하다. 우선 '피에타'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자.
[피에타(Pietà)]
'피에타(Pietà)'는 이탈리아어로 슬픔, 비탄을 의미하는 말이다. 미술에서는 아들인 예수의 죽음을 맞은 성모 마리아의 슬픔을 뜻하며, 기독교 예술의 대표적인 주제 중 하나이다. 그림과 조각으로 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다루어졌으며 주로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시신을 안고 비통해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사도 요한과 막달라 마리아 등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도 있고 성모 마리아와 예수만 등장하는 작품도 있다. 14세기 초 독일 미술에서 처음 시작된 이 주제는 프랑스로 퍼져나갔고 14~15세기에 북유럽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럼 미켈란젤로는 어떻게 '피에타'라는 작품을 만들게 되었을까?
어린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알아보고 조각가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던 로렌초 메디치가 갑작스럽게 죽고 돈을 벌기 위해 조각을 만들던 미켈란젤로는 우연한 계기로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가게 된다. 그의 나이 스물 한살 때이다.
로마에서 처음 주문받은 것이 '술 취한 바쿠스’인데 우아한 포즈의 조각상을 기대했던 주문자는 자세가 너무 풀어져 있다는 이유로 작품을 받기를 거부한다. 든든한 후원자도, 고객도 없이 고생하던 미켈란젤로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오는데, 그것은 당시 프랑스 대사 라그롤라 추기경이 미켈란젤로가 만든 '술 취한 바쿠스'를 보고 그의 재능을 알아본 것이다.

라그롤라 추기경은 산 피에트로 성당의 개인 예배당을 장식할 조각상을 미켈란젤로에게 의뢰하였고 그 주제가 피에타였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독일과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피에타 조각상을 프랑스 대사인 그가 의뢰한 것이다.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재능에 대한 자신감과 기대 때문인지, 그는 계약서 조항에 이런 문구를 넣었다.
'현존하는 작품 중에 가장 위대한 대리석 조각을 만든다.'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미켈란젤로가 이 프로젝트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3년의 시간이 걸려 만들어진 이 작품은 '현존하는 작품 중에’를 넘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움 조각 중 하나가 된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많은 인기를 누리던 '피에타'라는 주제가 이탈리아에서 미켈란젤로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말한다. 이 말의 의미는 미켈란젤로의 선배 작가들이 만든 피에타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래의 사진을 보자.


미켈란젤로의 재해석(Reinterpretation)
여러가지 면에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기존의 피에타와 다르다. 같은 주제이지만 그는 자신의 사유, 철학, 신앙, 예술적 영감 등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피에타를 만들어 내었다. 이제 우리는 미켈란젤로가 피에타라는 주제를 어떻게 재해석(Reinterpretation) 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신플라톤주의
미켈란젤로가 살았던 이탈리아의 피렌체는 르네상스가 꽃피던 시기로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고 철학은 신플라톤주의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신플라톤주의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의 교리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서로 통하는 것이고 고대인들이 추구한 아름다움은 종교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다. 중세 시대까지는 기독교 교리 때문에 인물의 사실적 묘사가 금기시 되었다. 교회의 성화는 아름다움이 목적이 아니라 기독교의 메시지 전달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15세기 피렌체에서는 완전한 아름다움의 추구가 신성을 더 잘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되었고 성모 마리아를 아름답게 표현하여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위의 보티첼리의 그림은 아기 예수와 함께 있는 젊은 성모 마리아이다. 피에타에서는 성인이 된 예수의 시신을 안고 있는 나이가 많고 슬픔에 찬 성모 마리아로 그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성모 마리아를 젊은 여성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마리아가 너무 젊다는 주변의 말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난 일부러 성모의 모습을 젊게 했네. 이는 순결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지. 성모는 어린 시절부터 신에게 선택된 이래 그 순결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한 분이 아닌가."
그리고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모습도 북유럽 피에타에서 보여지는 처참한 모습이 아니라 편안히 잠든 예수의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다한 평안한 예수의 얼굴은 명상에 잠긴 듯한 아름다운 성모 마리아의 모습과 함께 다른 차원의 경건함과 신성함을 느끼게 한다.


둘째, 조화와 균형
르네상스 시대 미술은 아름다움과 함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위치와 동작 하나하나가 세밀한 검토 끝에 정해지고 그려졌다. 피에타는 성인인 아들의 시신을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야 하는데, 독일 피에타 조각상에서 보듯이 키가 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의 모습을 어색하지 않게 그리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미켈란젤로는 성모 마리아를 상대적으로 더 크게 만들고 예수를 작게 표현하였다. 그리고 조각상에 안정감을 주기 위해 성모 마리아의 옷의 폭을 넓게 표현하였고 예수는 축 처진 듯한 모습으로 표현해 몸의 사이즈가 작게 느껴지지 않도록 하면서 안정감도 느낄 수 있게 하였다.

셋째, 예술은 자연의 모방, 대리석에 생명을 불어 넣은 디테일
르네상스 시대에 또 하나의 예술의 경향은 바로 '자연의 모방'이다. 눈에 보이는 자연 그대로를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이 예술이 추구하는 가치였다. 미켈란젤로는 고집이 세고 외골수의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하지만, 동시에 투철한 작가정신으로 타협을 모르는 예술가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예술가적 천재성과 작가로서의 성실함으로 육중한 대리석을 깎아 작은 힘줄과 핏줄까지 생생하게 묘사해 대리석이 살아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성모 마리아가 입은 옷의 주름도 섬세하게 표현해서 흘러내리는 듯한 치마의 주름이 도저히 대리석 같지가 않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360도 어디에서 보아도 아주 작은 부분까지 완벽하게 사실적으로 조각이 되어 있다. 그래서 새로운 각도에서 보면 전에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래는 위에서 본 피에타의 모습이다. 위에서 보았을 때도 평안히 잠든 듯한 예수의 표정과 자세가 자연스럽게 묘사되어 있는데, 특히 이 각도에서 보면 예수가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이 된다. 피에타의 이런 모습 때문에 미켈란젤로가 '피에타를 인간을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저 위에서 세상을 굽어보시는 하나님을 위해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20대 초반의 나이였던 미켈란젤로가 기존의 피에타가 가지고 있던 형식을 벗어나 어떻게 자신의 방식으로 재해석 했는지 살펴보았다. 대략 아래의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신플라톤주의 아름다움의 추구
둘째, 고대 그리스 예술과 같은 조화와 균형
셋째, 예술은 자연의 모방, 대리석에 생명을 불어 넣은 디테일
미켈란젤로는 기존의 북유럽 피에타 조각이 보여주는 처참한 예수의 모습과 슬픔과 비탄에 잠긴 성모 마리아와는 전혀 다른 해석을 보여주었다. 명상에 잠긴 듯한 아름다운 성모 마리아, 평안한 표정으로 잠든 듯한 예수의 모습, 두 사람의 자연스러운 포즈와 비율, 그리고 극단적인 사실적 묘사로 고결한 아름다움과 살아 숨쉬는 듯한 생명력을 가진 새로운 피에타를 만든 것이다.
어떻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 될 수 있는가’란 질문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대답한다.
‘익숙함을 과감하게 깨어버리고, 새로운 코드를 개인적인 관점과 색깔로 작품에 담는 것이 창의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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